MEDICAL DAILY의약일보

생리불순과 불임

이초란 기자


여성전문한의원이다 보니 생리불순 때문에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고, 요즘 들어서는 자궁에 기질적인 문제가 없는데도, 3개월 이상 생리가 없는 무(無)월경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이 부쩍 늘었다. 거기다가 20대 후반에서 30대에 걸쳐서 그전에는 만나보기도 힘들었던 조기폐경 환자들이 말 못할 고민을 토로하러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

2년 전 생리불순 문제로 찾아왔던 환자가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는 복잡한 이름의 병 때문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삼십대 초반의 전문직 여성이었다. 과거의 무월경은 치료가 되었는데 궁극적으로 나를 찾아온 건 불임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태는 과거보다 더 심각해져 있었다.

나에게 무월경 치료를 받은 뒤 한동안은 정상적인 생리를 했다고 했다. 그러다 급한 마음에 산부인과에서 4차례의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으면서 자궁과 난소가 과로를 해서 그런지 생리가 다시 사라졌고, 몇 달 동안은 산부인과에서 호르몬제를 맞고 몇 차례 생리가 나오긴 했지만 막상 임신을 하기 위해 다시 진찰을 받았을 때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으로 '불임'이라는 기가 막힌 진단을 받은 것이다.

과로와 함께 아마 당시 그녀를 짓누르고 있던 학위 논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녀의 병에 또 다른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의 경우는 원래 자궁과 난소가 약했는데, 거기에다 호르몬제를 투여해 억지로 생리를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원래 약했던 생식 기능을 더욱 지치도록 한 것이다.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을 땐 몸과 마음이 더 힘들어져서인지 오랫동안 내 앞에서 펑펑 울었다.

"아이가 정말 갖고 싶어서 그랬어요. 산부인과에서는 한 달만 쉬고 시험관 아기를 다시 해보자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어려 있는 상태로 나를 보고 독백하듯 던지는 그녀의 말이다.

"아직 자궁이 아이를 수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아직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것처럼 성급한 상태라구요. 임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엄마의 건강부터 챙겨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혹 임신을 하게 되더라도 유산이나 기타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녀 역시 그동안의 치료로 심신이 지친 탓에 내가 하라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먼저 자궁을 건강하게 회복시킨 후, 그 다음 단계로 본격적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성이 높았다. 안정을 위하여 최대한 일을 줄이도록 했고, 보혈 활혈을 기본 원칙으로 자궁의 기능회복을 위한 한약을 처방했다.

그녀가 나를 찾아온 게 12월이었는데, 나는 1단계로 12주의 자궁회복프로그램을 처방했다. "생리 때면 통증이 심하고, 피가 엄청 엉겨서 나와요. 지난번 무월경 치료 때 좀 더 꾸준히 치료를 받았으면 훨씬 괜찮았을 텐데..."

하지만 생리가 한달 거른다고 해서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다. 임상 경험에 비추어 보면 평소 건강하던 여성의 일시적 생리불순은 신체적 이상이라기보다는 생활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고 생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보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하다. 단, 3개월 이상 생리가 제때 없을 경우에는 치료를 서두르는 것이 좋다.

하지만 1년 이상 생리가 멈추었다면?

조기폐경의 가능성까지 고려해 보아야 할 만큼 예후가 썩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환절기 때의 일시적인 감기 몸살이 아닌, 무월경이나 생리불순 등 여성 특유의 증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곤란하다.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축적된 '불건강한 삶'이 병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반적인 건강 회복을 통해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는 방식의 한방 치료에서는 최소한 8주나 12주의 회복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녀는 정말 착실하게 치료를 받으러 왔다. 하지만 워낙 자궁의 기능이 허약해져 있어서인지 상태가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8주 치료가 끝난 1월까지 생리가 전혀 비치지 않았지만, 대신 얼굴색은 맑아지고 손발도 따스해졌다. "생리는 없고 갈색 젤리 같은 분비물만 있었어요" 좋은 현상이었다.

그녀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진단을 받은 후 그날 나를 다시 찾아왔다. 자궁이 깨끗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연 생리를 기다려 보고나서, 임신을 시도해도 가능할 듯싶었다. 그녀는 다음 달인 3월부터는 호르몬제 없이 자연 생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몸은 자연을 닮았다. 끊임없이 먹이를 주면 사냥할 생각도 하지 않고 나중에는 사냥할 감각마저 잃어버리는 야생동물처럼, 생리가 없고 자궁과 난소의 기능이 저하되었다고 해서 자꾸 호르몬제를 투여하면 자궁은 게으름을 부리기 시작한다. '개점휴업 상태'에 빠지는 것인데, 이는 호르몬제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현재 그녀는 행복한 아기 엄마가 되어 과거의 어려움을 잊은 채 잘살아가고 잇다. 그녀의 경우는 몸과 마음을 함께 치료해야했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웠던 케이스로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그녀가 임신에 성공하고 눈물어린 전화로 아들을 출산한 사실을 보고해왔을 땐 정말 뛸듯이 기뻤기 때문에 언론 인터뷰시 '잊을 수 없는 환자의 케이스'를 물어올 때면 가끔씩 그녀를 떠올리곤 한다.
이제 아이 엄마로서의 삶을 능숙하게 살아가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노라면 지금도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TIP.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란?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란, 여성의 아기씨인 난포들이 난소에서 한달에 20∼30개가량 자라나다가 배란기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난포만 커져서 배란이 되고 나머지 난포는 사라져야하는데, 여러 개의 난포가 서로 '여왕'이 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배란기에 여러 개의 큰 난포가 형성되어 정작 배란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보통 무월경과 생리불순을 동반하며 불임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남성호르몬이 많이 생겨 피부가 거칠어지고 털이 빳빳하게 자란다.

자궁내막이 배란 때 두꺼워졌다가 얇아지는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은 채 두꺼워지기만 해??자궁내막증식증'이 생기고, 심하면 자궁내막암에 걸리기도 한다.

사춘기 때 생리가 불규칙하고 얼굴이 번들거리면서 여드름이 많으면 이 병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이런 환자들은 황체자극호르몬(LH)의 양이 늘어나 있으며, 생리주기가 40일∼60일 가량으로 드물게 나타난다.

이 증후군은 2차적으로 자궁의 기능 저하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난소낭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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