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비만 인구가 늘고 있지만, 국가의 경제 수준에 따라 그 양상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소득 국가는 비만 증가세가 꺾이거나 감소 조짐을 보이는 반면, 저소득·중간 소득 국가는 여전히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새로운 보건 위기에 직면했다.
■ 44년간의 추적... "비만 증가 속도"에 주목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마지드 에자티 교수팀은 1980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200개 국가·지역의 2억3200만 명(성인 및 아동·청소년 포함)을 대상으로 체질량지수(BMI)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 지표는 단순 유병률을 넘어선 '비만 증가 속도(velocity of obesity)'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국가별 비만 추세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시각화했다.
■ 고소득 국가: "1990년 덴마크 시작으로 정체 및 감소세"
서유럽과 북미 등 고소득 국가들은 20세기 말까지 비만이 급격히 증가했으나, 최근 들어 그 기세가 눈에 띄게 둔화했다.
선도 국가: 1990년경 덴마크를 시작으로 아이슬란드, 스위스,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먼저 증가세 둔화가 나타났다.
연령별 특징: 어린이와 청소년층에서 먼저 정체기가 나타났고, 약 10년 후 성인층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관찰됐다.
국가별 격차: 서유럽은 성인 비만율 11~23%에서 안정화된 반면, 미국 등 영어권 국가는 25~43%라는 높은 수치에서 정체되는 양상을 보였다.
■저소득·중간 소득 국가: "영양 개선의 역설, 비만 폭발"
반면 중남미, 동남아시아, 중앙유럽의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들은 비만율이 여전히 치솟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온도 차: 동티모르와 베트남은 유병률이 2~3% 수준으로 낮지만, 태국과 브루나이는 최고 40%에 육박해 지역 내 격차가 컸다.
원인 분석: 경제 성장으로 기아 문제는 해결되고 체격은 좋아졌으나, 가공식품의 상업화와 노동의 기계화가 맞물리며 '건강하지 못한 체중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 "건강 정보는 보급됐지만, 비싼 건강식은 문제"
연구팀은 고소득 국가의 비만 둔화 요인으로 운동 권장 정책과 건강 정보 제공을 꼽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선 식품을 살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과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화제가 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에 대해서는 "아직 장기 추세에 영향을 줄 만큼의 데이터는 관찰되지 않았으나, 향후 가격과 접근성이 개선되면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비만은 멈출 수 있는 현상"
마지드 에자티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비만을 전 지구적인 '불가항력적 유행병'으로 보던 시각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만 증가 추세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닙니다. 고소득 국가의 사례처럼 적절한 정책 개입과 환경 조성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멈추거나 되돌릴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학교 급식 및 체육 프로그램 강화, 건강 식품의 가격 접근성 개선 등 각 나라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맞춘 '맞춤형 공중보건 전략'이 시급하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