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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 간판 92% '질환 외면'…환자는 유랑, 1차 의료 붕괴 경고등

고진아 기자

오늘날 길거리 곳곳에 보이는 '피부과' 간판이 오히려 아토피, 두드러기 등 실제 피부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2026년 6월 2일 기준, 의약일보가 '강남역 피부과' 검색 상단 40곳을 직접 확인한 결과, 무려 37곳이 건선 등 피부 질환 진료를 거부했다. 나머지 3곳 중 2곳은 2시간 이상 대기를 요구했고, 1곳은 간단한 약 처방만 가능하다고 답하며 사실상 피부 질환 진료 접근성은 붕괴 수준임을 드러냈다. 이는 지난 2026년 4월 방영된 SNL 코리아 '스마일 클리닉' 에피소드에서 아토피 환자가 진료를 거부당하는 상황으로 풍자된 현실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당시 SNL 코리아 속 정이랑 분 환자가 내뱉은 「간판이 피부과라고 해서 왔는데 지금 아토피 하나 못 봐요? 그러고도 의사야?」라는 대사는 현재 수많은 피부 질환 환자들의 절규를 대변한다.

환자들의 증언은 이 비극적인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토피로 며칠째 잠을 설쳤다는 김모(34) 씨는 '피부과 간판만 믿고 방문했다가 미용 시술만 한다며 진료를 거부당했다'고 토로했다. 극심한 두드러기로 응급실까지 다녀온 박모(29) 씨 역시 '동네 피부과 여러 곳을 전전했지만, 어디에서도 진료를 받아주지 않아 결국 대학병원으로 가야 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만성 습진으로 고통받는 심모(23) 씨,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신경통을 앓는 정모(37) 씨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법적 허점과 의료기관의 교묘한 편법 활용 때문에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40조는 전문의만이 '○○피부과의원'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비전문의 의원들은 '진료과목 피부과' 문구를 간판에 표기하며 환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일반적인 환자들은 '피부과'라는 단어만 보고 전문의 진료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미용 시술 위주의 비전문의 의원인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피부과' 간판 92% '질환 외면'…환자는 유랑, 1차 의료 붕괴 경고등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기형적인 의료 환경은 결국 수익성 악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2024년 피부과 의원 1개당 평균 건강보험 청구액은 4억2천4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10억~15억 원에 달하는 개원 및 유지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반면 미용 시술 시장은 비급여 항목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많은 비전문의 의사들이 이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료에 따르면, 신규 개설된 일반의 의원 176곳 중 무려 83%에 해당하는 146곳이 피부과를 신고하며 미용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는 '진짜 피부과'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증 피부 질환 환자들은 적절한 시기에 진료를 받지 못해 질환이 만성화되거나 중증화되는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다. 김범준 중앙대 의대 피부과 교수는 「경증으로 끝날 질환이 만성화되거나 치료 시기를 놓쳐 중증화될 위험이 크다」며 '이는 환자들의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만성 두드러기로 고생하던 황모 씨는 제때 치료받지 못해 결국 합병증까지 생겼고, 심각한 건선으로 고통받는 이모(42) 씨는 '동네 피부과를 포기하고 대학병원만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권 주요 대학병원 피부과는 이미 마비 상태다. 최소 4개월을 기다려야 예약이 가능할 정도로 진료 적체가 심각한 실정이다. 1차 의료기관으로서의 피부과 기능이 사실상 붕괴된 것이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비전문의 의원 간판에서 '진료과목' 표기를 삭제하고 미용 시술 기관과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검토 중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환자들의 혼란을 줄이고 적절한 진료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시행규칙 개정을 2026년 하반기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응호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는 '단순한 간판 규제를 넘어 전문의와 비전문의의 진료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보험 수가 현실화를 통해 피부과 전문의들이 피부 질환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진짜 피부과를 찾아 헤매는 환자들의 목소리는 1차 의료 인프라 붕괴의 심각한 경고음이다.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 검토가 2026년 하반기에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져, 환자들이 혼란 없이 적절한 피부 질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본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 단순히 간판을 바꾸는 것을 넘어, '피부과'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고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의료 시스템을 재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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