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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벡 2만5천원' 절망 깬 투쟁, 우석균 64세 별세…의료 공공성 큰 별 지다

고진아 기자

1정당 약 2만5천674원에 달했던 '글리벡' 약가에 맞서 수많은 만성골수백혈병 환자의 생명을 지켜내며 한국 의료운동의 큰 발자취를 남긴 우석균 전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가정의학과 전문의)가 64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고 우석균 전 대표는 이날 0시 30분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별세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고인은 학생운동과 5년간의 노동운동을 경험하며 일찍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눈떴다. 1993년 전공의협의회 결성에 가담한 이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와 보건의료단체연합 대표를 역임하며 한국 의료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

고인의 투쟁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이다. 2001년 스위스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만성골수백혈병 신약 '글리벡'을 국내 출시했을 때, 환자들은 생명줄을 잡았지만 동시에 절망에 빠졌다. 1정당 약 2만5천674원, 월 300만~450만원에 달하는 고가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수많은 환자가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당시 정부 고시가 1정당 1만7천862원(월 214만3천440원)에도 불구하고 노바티스는 약 공급 중단으로 맞서며 긴박한 국면이 조성됐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고 우석균 전 대표는 인의협 담당자로서 환자들 곁을 지켰다. 2001년 중반, 그는 한국백혈병환우회의 강주성 사무국장을 찾아 '환자 당사자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연대 투쟁을 제의했다. 2002년 말에는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을 권유하는 등 환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력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글리벡 2만5천원' 절망 깬 투쟁, 우석균 64세 별세…의료 공공성 큰 별 지다
[사진=연합뉴스]

고인의 헌신과 환자들의 용기 있는 투쟁은 마침내 2003년 1월 역사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부와 노바티스, 환자 단체는 글리벡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약가를 1정당 2만3천45원으로 고시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노바티스는 약값의 10%를 기금 형태로 환자들에게 환원하고, 암 환자의 외래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기존 30~50%에서 20%로 인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만성골수백혈병 환자의 생명을 구했을 뿐 아니라, 국내 최초의 성공적인 「환자 당사자 운동」으로 평가되며 한국 의료 시스템에 혁신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글리벡 투쟁 이후에도 고인은 공공의료를 향한 쉼 없는 여정을 이어갔다. 광우병 소 수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영리병원 도입 등 의료 공공성을 위협하는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 2001년부터 작년(2025년)까지 성수의원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의료에 기여했고, 『의료붕괴: 한국 의료시스템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2017), 『괴물의 등장 : 코로나19, 조류독감, 자본주의의 전염병』(2025), 『이윤보다 생명을:실천하는 의사 우석균 저작선』(2025)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의료 현안에 대한 통찰을 대중과 공유했다.

고인의 별세 소식에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강주성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2025년 10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살면서 의사에게 최소한의 신뢰와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면 바로 이 우석균 선생 때문일 것」이라는 글을 남겨 고인의 진정성과 헌신을 기렸다. 유족으로는 1남2녀(우지안·우수안·우형안)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일 오전 7시,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고 우석균 전 대표의 별세는 한국 보건의료계에 큰 공백을 남겼다. 그러나 「이윤보다 생명을」이라는 그의 일관된 신념과 투쟁은 2026년 현재에도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의료 공공성의 핵심 가치로 유효하다. 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헌신과 용기는 단순히 과거의 업적이 아니라, 더 나은 의료 시스템과 사회적 연대를 위한 지속적인 과제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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