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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 레나카파비르, 남아공 보건 주권 시험하는 두 얼굴

고진아 기자

2026년 6월, 단 1회 접종으로 6개월간 HIV 감염을 막는 '게임체인저' 레나카파비르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입되며 세계 최다 HIV 보균국에 희망의 빛을 던졌다. 그러나 이 혁신적인 약물 뒤에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건 원조 중단 여파로 흔들리는 남아공 보건 시스템의 암울한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희망과 위기라는 양극단에 선 남아공이 과연 '보건 주권'이라는 새로운 시험대를 어떻게 넘어설지, 의약일보가 심층 분석한다.

지난 6월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음푸말랑가주 엠발렌흘레 진료소에서 21세 제인 믄데벨레가 아론 모초알레디 남아공 보건장관으로부터 HIV 예방 주사제 레나카파비르를 처음 접종받았다. 미국 길리어드가 개발한 이 약물은 1회 접종으로 6개월간 HIV 감염을 막아, 과학 저널 사이언스 '2024년 올해의 혁신'으로 선정됐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세쿤다에서 약물 출시를 알리며 「오늘은 희망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남아공 정부는 13억 랜드(약 1,200억 원)를 투입, 2027년 말까지 100만 명, 3년 내 300만 명에게 레나카파비르를 보급할 계획이다. 현재 6개 주 24개 고위험 지역의 공공보건시설 360곳이 접종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 이면에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미 국제개발처(USAID)를 실질적으로 해체하고 아프리카 보건 원조를 중단·삭감한 여파가 깊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남아공은 HIV 보균자 780만 명으로 세계 최다이며, 같은 해 신규 감염자만 17만 명에 달했다. 2024년 항바이러스제 치료자는 630만 명에 그쳐 치료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인권을 위한 의사들'(PHR)의 올해 4월 보고서는 미국의 원조 중단이 남아공 HIV 대응 예산의 약 17% 규모였으나, 그 이상의 피해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HIV 고위험 청소년 여성 지원, 소아 진단, 데이터 관리,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등이 큰 타격을 입었다. 긴급에이즈구호자금(PEPFAR) 중단으로 거리 검사나 이동 클리닉이 줄어들며 환자들은 병원 방문을 강요받고 있다. 한 HIV 예방 활동가는 「예전에는 거리에서 바로 HIV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줄을 설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한다」고 증언했다. 이는 대기시간 증가, 상담 서비스 축소, 의료진 과부하, HIV 검사 생략 등의 문제로 이어졌다. 지난해 남아공 시민단체 리트시제 조사에서도 환자 약 35%가 항바이러스제 수령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고 답했다. 급기야 지난 6월 17일에는 콰줄루나탈주 피터마리츠버그에서 의사 50여 명이 일자리 부족에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게임체인저’ 레나카파비르, 남아공 보건 주권 시험하는 두 얼굴
[사진=연합뉴스]

이에 남아공 정부는 원조 공백을 자생력과 '보건 주권' 구축의 계기로 삼는다. 재무부는 HIV·에이즈 연구 공백 보전을 위해 4억 1천만 랜드를 추가 투입하고, 2028년까지 보건 예산을 현재보다 4.2% 확대한 3천343억 랜드로 늘릴 계획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2040년까지 대륙 내 보건 제품 60% 자체 생산이라는 아프리카연합(AU) 목표를 언급하며 「보건 안보는 주권이며 회복력이자 번영」이라고 강조했다.

남아공의 노력은 비단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아프리카 CDC) 장 카세야 사무총장 또한 「아프리카는 더 이상 원조 의존 모델에 머물 수 없다」고 역설하며, 자체 생산 능력과 국내 보건 재정 확대를 통해 보건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보건 안보는 주권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남아공의 사례는 의약 혁신이 정치적 불안정성과 맞물릴 때 얼마나 취약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HIV '게임체인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보건 시스템 근간이 흔들리는 현실은 단순한 원조 공백을 넘어 '보건 주권'과 자생력 강화가 남아공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생존 과제로 대두했음을 시사한다. 이중적 도전에 직면한 남아공이 혁신을 발판 삼아 보건 시스템을 재건하고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그리고 아프리카 스스로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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