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환자 곁의 마지막 의사'이자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을 승리로 이끈 보건의료 운동의 큰 별, 우석균 전 성수의원 원장이 향년 64세로 별세했다. 전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7일 0시 30분경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은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와 환자 권리 옹호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한국 보건의료 운동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우석균 전 원장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궤적 중에서도 단연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2001~2003년)은 그의 이름 앞에 가장 빛나는 수식어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국내 최초 '환자 당사자 운동'으로 평가되며, 고가의 신약 앞에서 생존권을 위협받던 환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투쟁의 배경은 절박했다.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가 2001년 출시한 만성골수백혈병 신약 '글리벡'은 1정당 2만5천674원이라는 상상 초월의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하루 4알을 복용하면 월 300만~450만원에 달하는 약값은 대다수 환자들에게 치료 포기를 강요하는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정부가 1정당 1만7천862원으로 약가를 고시하자, 노바티스는 이에 반발하며 '한국에 약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협박해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때 우 전 원장이 나섰다. 당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담당자였던 그는 한국백혈병환우회 강주성 사무국장(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에게 먼저 연대 투쟁을 제의하고,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을 독려했다. 강주성 대표는 2025년 10월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내가 살면서 의사에게 최소한의 신뢰와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면 바로 이 우석균 선생 때문일 것」이라며 고인을 회고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2003년 1월 역사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부, 노바티스, 환자 단체 간의 극적인 타결로 글리벡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암 환자 외래 진료비 본인부담률은 기존 30~50%에서 20%로 인하됐다. 최종 약가는 1정당 2만3천45원으로 고시되었으며, 노바티스는 약값의 10%를 기금 형태로 환자에게 환원하기로 약속했다. 이 합의는 고가 신약 시대의 문을 열며 의료 접근성 및 환자 권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우석균 전 원장의 삶은 글리벡 투쟁 하나에 국한되지 않았다. 1962년생인 그는 1980년 서울대 의대 입학 후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학교를 그만둔 후 5년간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93년에는 전공의협의회 결성에 가담하며 의료계 내부 개혁에도 힘썼다. 인의협과 보건의료단체연합의 대표를 역임하며 한국 보건의료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2001년부터 지난해(2025년)까지는 서울 성수동에서 성수의원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환자들의 곁을 지켰다. 광우병 소 수입, 한미FTA, 영리병원 도입 반대 등 굵직한 사회 현안에도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다. 2013년 진주의료원 폐원 철회 촉구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는 단순히 행동하는 의료인이 아니었다. '의료붕괴'(2017), '괴물의 등장'(2025), '이윤보다 생명을'(2025)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깊이 통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실천적 지성의 면모를 보였다. 2023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구술 채록을 진행한 것 또한 그의 학술적, 사회적 중요성을 방증한다.
우석균 전 원장의 별세는 단순한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환자들의 생명과 의료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던 '시대의 양심'을 잃은 큰 손실이다. 그의 삶은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과 같은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 환자들의 생명을 지켜내고 의료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노력의 연속이었다. 2026년 현재,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료 불평등과 고가 신약 약가 문제 앞에서 그의 정신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과 과제를 남겼는지 되묻게 한다. 그의 발자취는 미래 보건의료 운동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2026년 6월 9일 오전 7시,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유족으로는 우지안, 우수안, 우형안 씨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