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전문의의 진단도 믿지 못하는 보험사. 지난 한 해 접수된 보험금 지급 거절 분쟁의 67.4%는 '주치의 진단 불인정' 때문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발표는 의료 전문가의 권위가 보험사의 이익 논리에 의해 훼손되는 심각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소비자원이 2026년 06월 08일 공개한 2025년 보험 피해구제 신청 분석 자료에 따르면, 총 930건의 신청 중 85.8%(798건)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로 인한 분쟁이었다. 이 심각한 분쟁의 중심에는 '주치의 진단·치료 불인정'이 있었다. 전체 지급 거절 분쟁의 67.4%(538건)가 주치의의 전문적인 판단을 보험사가 받아들이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의 진단조차 보험사가 거부한 사례가 38.5%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보험사가 자체적인 판단을 앞세워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료진의 진단을 불신하는 관행은 '의료자문' 제도 남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본래 객관적인 판단을 돕기 위한 이 제도가 보험금 지급 거절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현실은 의료계와 환자 모두에게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의료자문 요구에 소비자가 불응하거나 그 결과를 수용하지 않아 분쟁이 심화된 경우가 70.1%에 달했다. 이는 소비자가 의료자문 절차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주치의 진단과 상반되는 자문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실제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뇌졸중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한 한 환자는 보험사로부터 「자체 확인 결과 유의미한 협착 없음」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보험사는 환자가 의료자문 동의서에 서명하기 전까지 심사를 무기한 중단시키며, 환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사실상 가로막았다. 이러한 사례는 보험사가 대학병원의 전문적인 진단마저 불신하며, 자체적인 판단을 고수하는 행태를 명확히 보여준다.
보험사의 일방적인 의료자문 요구와 진단 불인정은 막대한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다. 의료자문을 이유로 지급 거절된 보험금은 평균 1,618만원에 달했으며,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미만'의 고액 청구 건이 39.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단순히 소액의 분쟁을 넘어, 환자의 생계와 치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 미치는 중대한 문제임을 시사한다.
현재 운영 중인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의 '의료자문 내부통제 기준'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1년 8월 제정된 이 기준은 보험사의 의료자문 남용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으나, 실제 분쟁 현장에서는 여전히 보험사의 우월적 지위를 견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소비자원은 이러한 제도적 허점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기준 개선을 요청할 계획이다.
소비자원의 제도 개선 요청이 단순히 규정 보완을 넘어, 환자의 정당한 진단과 보험금 청구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의료계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 보험사의 일방적인 판단이 의료 시스템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의약·보건 전문 매체로서 지속적인 감시와 제도 개선 촉구가 시급하다. 이는 결국 환자의 건강권과 의료 전문가의 자율성을 지키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