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암의 대명사인 췌장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약물 전달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홍합의 강력한 접착 원리를 이용해 암 조직에만 선택적으로 항암제를 전달하는 이 기술은 치료 효율을 높이고 전신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화학공학과·융합대학원 차형준 교수와 이혁준 통합과정 연구팀은 암 조직에 도달했을 때만 스스로 보호막을 벗고 항암제를 방출하는 '지능형 나노입자'를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 홍합의 '찰떡' 원리로 암 조직에 단단히 결합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고 주변 장기로 빠르게 전이되어 치료가 까다로운 암이다. 현재 널리 쓰이는 항암제 '젬시타빈'은 정맥 투여 시 혈액 속에서 빠르게 분해되거나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여 전신 부작용을 일으키는 등 한계가 명확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홍합이 습한 환경의 바위에도 단단하게 달라붙는 특성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대량 생산한 '홍합 접착단백질'로 나노입자를 만들고, 내부에 항암제인 젬시타빈을 봉입했다. 여기에 인체 내에서 안전한 '폴리에틸렌글리콜(PEG)' 보호막을 씌워 혈액 속에서는 약물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했다.
◇ 암세포 표적 분해 시스템… 치료 효과 '60% 이상 향상'
이 기술의 핵심은 '지능형 보호막'이다. 연구팀은 췌장암 조직에서만 다량 분비되는 특정 효소인 'MMP2'에만 반응하여 끊어지는 특수 펩타이드를 보호막 연결고리로 사용했다.
이 나노입자가 혈관을 타고 순환하다 췌장암 조직에 도착하면, 암세포가 분비하는 MMP2 효소가 보호막 연결고리를 분해한다. 보호막이 사라지면 홍합 접착단백질이 노출되는데, 이 단백질의 강력한 접착력이 나노입자를 암 조직에 단단히 고정해 항암제를 지속적으로 암세포 내부에 침투시킨다.
실제 췌장암 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기존 항암제 투여 방식이나 일반 나노입자를 사용했을 때보다 암 조직 내 약물 축적 및 유지 시간이 60% 이상 증가했다. 특히 전신 독성 부작용 없이 종양의 부피와 무게가 눈에 띄게 감소했으며, 조직 분석 결과 암세포가 광범위하게 사멸한 것으로 확인됐다.
◇ 난치성 고형암 치료의 새로운 이정표 기대
이번 연구 결과는 생체 소재 분야 국제학술지인 '바이오머티리얼즈(Bio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앞으로 이 플랫폼을 췌장암뿐만 아니라 약물 전달이 까다로운 다양한 난치성 고형암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차형준 교수는 "항암 치료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작용은 줄이고, 표적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는 기술"이라며 "췌장암을 포함한 난치성 고형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