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밤하늘의 별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름밤 옥수수를 먹으면서 하늘을 보면 꼬리를 끌고 가는 유성이 보인다. 늦가을엔 청색벨벳에다 보석을 던져둔 것 같이 빛난다.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로 별들은 자리를 옮겨 여행을 지속한다. 한의학 역시 유성과 보석이 있을 수 있으며 시간을 따라 여행 중이다.

최근 한의대 조교로 남으려는 한의사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기야 어찌되었건 간에 한의사로서의 정체성 훼손 없이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한의사의 역할에 충실한 인재로, 연구자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한의학에는 연구할 자료들이 많다. 임상가들도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 때가 있은데,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재원들이랴! 기대가 크다. 진료 틈틈이 나는 이런연구들을 상상한다.

-시력향상

어린 아이들이 원시나 근시, 약시, 난시를 보이는 사례가 종종 있다. 양쪽 시력이 발달하는 결정적인 나이는 대략 만 5세까지인데, 이 시기는 뇌의 용량과 지적인 발달 양측에서 급격한 상승이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동의보감 眼문의 內障에 사용된 처방에는 滋陰地黃丸과 滋腎明目湯등 補血·補肝腎하는 처방이 있다. 야채나 분재를 가꿔 본 사람은 식물이 뿌리를 잘내리고 줄기가 든든해지는게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시기가 바로 이런 중요성을 지닌시기이다. 사람의 일생 중 엄마의 태중에 있는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시력은 태어난 이후에 확인할 수 있음으로 결국 시력이 발달하는 결정적인 나이까지가 소아들의 시력을 개선할 수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內障에 사용된 약재에는 생지황이나 당귀, 치자, 천 궁, 천문동, 대조처럼 뇌 신경세포를 보호하거나 생성하는 효능이 있는 약재들이 포함되어 있다. 눈은 한꺼풀만 벗기면 뇌신경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처방이 신경의 발달에 영향을 주어 시력을 개선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가설이 증명되기 위해서는 좀 가혹하지만 이런 연구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신경 발달의 어느 시점에서 시신경 손상을 유발한 쥐 몇 마리를A·B 그룹으로 나눈 후 A그룹은 한약과 사료을 먹이고 B그룹은 사료만 먹여서 경과를 확인하여 검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쥐의 뇌혈류량을 잴 수 있다면 시신경으로 유입되는 혈액량을 A군과 B군으로 나눠 조사해서 비교해보는 방법도 좋겠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이유는 뇌 손상을 입거나 정신지체로 진단된 아동의 치료과정에서 겪은 일화들 때문이기도 하다.

뇌성마비 아동 중에 안구(눈 자체)는 정상이나 시신경의 문제로'盲'진단을 받고 전형적인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한 아동이 있었다. 이 중 두 명을 제외하고는 뇌발달 치료를 하던 3~7세 사이에 시력을 갖게 되었는데, 이 결과가 나이에 따른 것인지 뇌에 대한 한약의 영향인지 불분명하다. 그리고 盲은 아니었으나 눈부심이 심하고 근시였던 아동 중에 加味地黃丸을 꾸준히 복용한지 6개월~1년이 지나자 햇빛 눈부심이나 눈물 흘림이 없고 시력이 나아진 결과들이 있었다. 때문에 內障에 사용된 한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증하다.

-소아유뇨

아이들 중에는 七情傷이나 대·소변 가리기 훈련의 소홀이 아닌데도 낮시간에 유난히 소변을 참지 못하거 나 자주 누고, 심지어 야간에 최대 5시간을 버티고 나면 바로 야뇨를 해버리는 아이가 있다. 예닐곱살 유치원생은 물론 초등학생, 일부 중학생에서도 나타난다. 결국 아동 스스로 성숙해야 해결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진료하던 아이 중 한명은 유치원에서 소변을 참지 못해 실수를 한 이후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또 나이가 있는데도 야뇨를 하다 보니 점점 소심해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데다 성적마저 떨어져서 이래저래 속상해하는 부모가 있었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치료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도 오 랫동안 고통과 불편을 겪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六味地黃湯가감방이나 蔘湯을 과립이나 정제 형태로 개발하여 일정기간 복용하게 하므로 소변 참는 시간을 늘려서 아동의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도록, 일상생활에 불편하지 않도록 도우면 좋겠다. 기존의 양약 치료제들과 비교실험을 해서 효과와 부작용을 검증하고, 비교우위에 있다면 치료제 비용을 낮추고 복용방법이 간편해지는 데까지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청소년의 빈혈

인하대학교 김순기 교수의'중금속의 인체 모니터링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2~14세 남녀학생 893명 중 남학생의 2.9%, 여학생의 6.9%가 빈혈이었다. 철결핍 또한 남학생 중 38명(8.4%)과 여학생 중 69명(15.6%)에 해당되었다.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의 식습관과 부적절한 다이어트에 대한 조언 및 빈혈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또 임산부 중에도 빈혈 증상이 있어 치료가 필요한 사례가 더러 있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 있는 철분제제빈혈치료약은 복용 후 설사나 변비가 쉽게 초래되어 뒤끝이 찝찝하다. 팔물탕이나 궁귀탕을 산제와 정제로 개발해서 기존의 치료제들과 효능 및 부작용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다. 가임기 여성의 50%는 월경통으로 매달 반복되는 고생을 한다. 그 원인의 대부분은 모른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월경통 때문에 진통제를 먹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대안이 될 만한 한약이 없을까? 부인과 교수님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해볼만 할 것 같다. 진통제와 비슷한 수준으로 통증 조절이 되면서 위장관에 대한 부작용이 적은 정제타입의 한약이 개발되면 활용도가 높을 것같다. 예를 들어 蟠散처럼 비위가 虛冷한 여성이 복용할 수 있는 類의 약물이라면'부작용이 적은 월경통치료제'로 환영받지 않겠는가?

-溫故而知新

溫故而知新에 대한 고민은 오래 전부터 화두였지만 여전히 溫故에 대한 한계를 느낀다. 知新이 溫故에 비하면 좀 더 재밌고 쉬웠다. 한의사로 사는 동안에 스스로의 만족과 환자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기 위해 나는 이 둘의 조화를 잘 이루고 싶다. 물론 연구직인 한국한의학연구원과 전국의 한의과대학 교수님들께서 더욱 분발하시기를 바란다. 기초연구부터 임상연구에 이르기까지 實事求是를 토대로 한의학이 의학으로서나 제약산업으로 크게 발전하길 기대하는 게 너무 이상적인가?

체질과 변증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질병 혹은 증상 자체도 같은 비중으로 고려되길 바란다. 증상과 질병에 따라 복용자 60%가 만족하는 약물과 이보다 더유효한 수준의 맞춤형 처방은 병행되어 발달함이 바람직하며, 맞춤형 처방이라는 미명하에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醫家와 설이 난무하는 현상이 자제되었으면 좋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의사는 16세기 허준과 무엇이 같아야 할까? 어떤 사람은 한의학을 이해하는 데서 같아야 한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허준이 그 시대의 needs와 후세대의 앞길을 밝혔던 바로 그 점에서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이 시대의 needs와 후세대의 앞길을 밝히고 있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그동안 많았다. 우리에게 모욕과 수치를 안겨준 사건들과 포스터들이 단적인 증거다. 이런 일들을 억울해 하기 전에 학자인 교수와 의료인인 한의사가 같이 반성을 하면서 방향을 찾아갔으면 한다.

고등학교 시절 유학생이던 친척으로부터'현실은 이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다'는 편지를 받았다. 이상을 향해 현실을 차분히 밟아가는 연구자들의 숱한 고민과 노력이 밤하늘의 청아한 별빛처럼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이 글은 대한한의사협회(http://www.akom.org) 한의칼럼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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