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당뇨병, 흡연 등 개인의 생활 습관뿐만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주거 환경 역시 심혈관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집 주변에 공원과 녹지가 풍부할수록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유의하게 낮아진다는 분석이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및 길병원 인공지능빅데이터센터 공동 연구팀(김은지·권준현·정윤재 교수)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해 심혈관질환 병력이 없는 성인 32만1999명을 대상으로 2010~2012년부터 2019년까지 약 10년간 장기 추적 관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환경보건 분야 국제학술지인 '위생 및 환경보건 국제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Hygiene and Environmental Health)' 최신호에 게재됐다.
■ 녹지 비율 높아질 때마다 위험도 '단계적 감소'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거주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전체 면적 중 공원 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을 산출한 뒤, 이를 4개 구간으로 나눠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비교 분석했다. 정확한 통계를 위해 추적 기간 중 거주 지역을 변경하지 않은 사람들로 대상을 한정했다.
분석 결과, 공원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의 심혈관질환 발생률은 인구 1,000명당 연간 3.59건이었으나, 공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2.60건에 그쳤다.
연령과 성별, 소득 수준, 흡연 여부, 장애 유무, 동반질환 등 심혈관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들을 모두 보정하더라도 결과는 일관됐다. 연구팀은 공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거주자가 가장 낮은 지역 거주자보다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17% 낮다고 추산했다. 심근경색, 심부전, 뇌혈관질환 등 질환별 세부 분석에서도 이와 유사한 보호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녹지 비율이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심혈관질환 위험이 약 6%씩 감소하는 뚜렷한 '용량-반응 관계(단계적 감소 경향)'도 관찰됐다.
■ 대도시에서 더 빛난 '공원의 가치'
주목할 점은 이러한 공원의 건강 증진 효과가 서울 및 광역시 등 '대도시'에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반면 농촌 지역에서는 녹지 비율이 최고 수준인 구간에서만 유의미한 위험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대도시와 농촌의 환경적 특성 차이에서 원인을 찾았다. 대도시는 인구 밀도가 높고 교통량이 많아 대기오염, 소음, 열섬현상 등 다양한 환경 스트레스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이 때문에 공원과 녹지가 제공하는 환경 정화 및 건강상의 이점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작용한다는 해석이다.
반면 농촌은 행정구역상 지정된 '공원' 면적이 작더라도 산과 들, 농지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 이미 풍부하기 때문에 공원 면적만으로는 실제 녹지 노출 수준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 공원은 어떻게 심혈관을 보호하는가?
연구팀은 주거지 주변 공원이 심혈관질환을 낮추는 핵심 기전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실질적인 신체활동의 증가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측정되는 일반 녹지는 농경지나 도로변 수풀 등 접근이 어려운 공간을 포함하지만, 공원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걷고 뛰며 운동할 수 있도록 조성된 생활 기반 시설이다. 추가 분석 결과 실제로 공원 인프라가 주민들의 신체활동을 이끌어내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둘째, 정신·사회적 안정 효과다. 자연환경에 노출되면 만성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자율신경계 균형이 개선된다. 또한 이웃 간의 교류를 통해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공동체 결속력을 높여 심혈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셋째, 대기오염 및 소음 차단이다. 도심 속 나무와 식물은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소음을 완화하는 천연 완충지대 역할을 하여, 심혈관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 위해 요인을 감소시킨다.
이외에도 쾌적한 환경이 조성된 지역일수록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적 규범이 형성되어, 심혈관질환의 강력한 위험 인자인 흡연율이 낮아지거나 흡연 의존도가 줄어드는 간접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짚었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김은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규모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장기 추적을 통해 공원의 유익한 효과를 일관되게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도시계획과 토지 이용 정책을 통해 주민 접근성이 높은 공원과 녹지를 확충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공중보건 예방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