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천연 지방 대사물질이 암세포 성장의 핵심 조절 인자를 직접 억제한다는 새로운 항암 메커니즘을 규명해냈다. 인위적인 합성 화합물이 아닌 체내 물질을 활용한 새로운 항암 및 항노화 치료제 개발에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김세윤 교수와 고려대학교 변영주 교수 공동 연구팀은 체내 지질 대사물질인 '13-HODE'가 암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핵심 효소인 '엠토르(mTOR)'의 활성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일 발표했다.
■ 암세포의 에너지원 '엠토르(mTOR)' 효소 저격
엠토르(mTOR)는 세포의 성장, 증식, 그리고 에너지 사용을 조절하는 생체 내 필수 단백질 효소다. 그러나 암세포에서는 이 엠토르 효소가 비정상적으로 과활성화되어 암세포의 통제 불능한 증식과 주위 조직으로의 전이를 촉진하는 '암 성장의 주범'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제약 바이오 업계는 엠토르를 안전하게 제어할 수 있는 항암제 개발에 사활을 걸어왔다.
연구팀은 기존의 인공 합성 화합물 대신, 인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천연 대사물질' 중에서 답을 찾았다.
연구팀은 방대한 양의 생체 내 대사물질을 대량으로 분석하는 '대사체 스크리닝 기술'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물질 중 '13-HODE'라는 지질 대사물질이 엠토르 단백질의 활성 부위에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직접 결합해, 암세포 내에서 엠토르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멈춰 세운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 불포화지방산 '리놀레산' 대사 과정의 비밀
연구팀에 따르면, 암세포를 잡는 '13-HODE' 분자는 우리가 흔히 섭취하는 식물성 기름 등에 풍부하게 함유된 필수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레산'이 체내에서 소화·대사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이 과정에서 체내 지방산 산화 반응을 유도하는 효소인 'ALOX15'가 리놀레산과 만나 산화 작용을 일으키며 최종적으로 '13-HODE'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즉, 일상적인 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암세포의 증식을 스스로 억제하는 천연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 차세대 항암·항노화 치료 전략의 발판 마련
이번 연구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체내 지방 대사물질의 새로운 항암 효능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KAIST 김세윤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체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지방 대사물질이 암 성장의 핵심 단백질인 엠토르를 직접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지방 대사 경로를 활용한 신개념 항암 치료 전략 수립은 물론, 만성 염증이나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엠토르 과활성을 조절하는 다양한 질환 치료제 개발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