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건의료 운동의 큰 별이자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신념을 평생 실천했던 우석균 전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향년 64세로 영면에 들었다. 2026년 06월 07일 0시 30분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별세한 고인의 삶은 만성골수백혈병 환자들의 생명줄을 되찾아준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의 승리와 더불어 의료 정의를 향한 끊임없는 헌신의 기록이었다.
고 우석균 전 공동대표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으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며 1983년 중퇴하는 등 일찍이 사회 변혁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이후 다시 학업을 마쳐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그는 1993년 전공의협의회 창설에 가담하며 의료 현장의 불평등 해소에 목소리를 냈다.
그의 삶에 있어 가장 극적인 이정표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이었다. 2001년 노바티스가 만성골수백혈병 신약 '글리벡'을 출시했을 때, 1정당 약 2만5천674원, 월 300만~450만원에 달하는 약값은 환자들에게 '치료 포기'를 강요하는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당시 정부가 1정당 1만7천862원으로 약가를 고시하자, 노바티스는 한국에 약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맞서며 초국적 제약사의 공룡 횡포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우 전 공동대표는 당시 인의협 담당자로서 2001년 중반 한국백혈병환우회에 연대 투쟁을 제의하며 물꼬를 텄다. 이는 국내 최초의 '환자 당사자 운동'으로 기록될 역사적인 싸움의 시작이었다. 고가의 약값과 제약사의 횡포에 맞선 환자와 시민사회단체의 투쟁은 2002년 말 환자들의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공론화를 이끌었다.
결국 2003년 1월, 정부-노바티스-환자 단체 간 극적인 합의가 도출되었다. 이 합의로 글리벡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었고, 최종 약가는 1정당 2만3천45원으로 확정되었으며, 노바티스는 약값의 10%를 기금으로 환원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30~50%에 이르던 암 환자 외래 진료비 본인부담률이 20%로 대폭 인하되는 전 사회적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이는 우석균 전 공동대표가 거대 제약사와 정부로부터 의미 있는 양보를 이끌어내며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견인한 결정적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고인은 2001년부터 2025년까지 성수의원을 운영하며 의료 소외 계층을 위한 헌신을 이어갔으며, 글리벡 투쟁 외에도 광우병 소 수입, 한미 FTA, 영리병원 반대 등 첨예한 사회적 이슈 현장에서 의료 본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7년과 2025년 저서를 출판하고, 2023년에는 구술 채록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의 동료이자 오랜 벗인 강주성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2025년 10월 17일 페이스북에 「내가 살면서 의사에게 최소한의 신뢰와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면 바로 이 우석균 선생 때문일 것」이라는 절절한 회고를 남기며 고인의 인품과 의사로서의 신념에 깊은 존경을 표했다. 유족으로는 1남2녀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되었다.
고 우석균 전 공동대표의 별세는 한 시대의 마감이 아니라, 한국 보건의료 운동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가 될 그의 유산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의 삶이 보여준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의사의 참된 가치와 불굴의 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의료 정의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며, 우리 모두는 고인을 향한 깊은 추모와 존경을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