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GLP-1 RA) 계열의 비만치료제가 체중 감량 효과를 넘어 비만 관련 암 발생 위험까지 획기적으로 낮춘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8일 미국 휴스턴 메소디스트 병원의 아파르나 카마트(Aparna Kamat) 박사 연구팀은 당뇨병이 없는 비만 성인 약 22만 9,000명의 의료 기록을 분석한 결과, GLP-1 비만치료제를 사용한 환자군이 식이요법과 운동만 시행한 집단에 비해 비만 관련 암 발생 위험이 41% 낮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유럽종양학회(ESMO) 공식 학술지인 '종양학 회보(Annals of Onc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
GLP-1 RA 계열 약물은 원래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탁월한 체중 감량 효과가 증명되면서 최근에는 세마글루타이드(제품명 오젬픽·위고비)와 티르제파타이드(제품명 마운자로·젭바운드) 등을 필두로 비만 치료에 광범위하게 처방되고 있다.
기존에도 GLP-1 약물이 당뇨 환자의 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근거는 일부 제시된 바 있으나, 당뇨병이 없는 젊은 비만 환자층을 대상으로 암 예방 효과를 대규모로 추적 관찰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미국 환자 1억 1,300만 명의 데이터가 축적된 의료 데이터베이스(TriNetX)를 활용해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당뇨 없는 비만 성인 22만 467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중 8만 6,422명은 2014년 12월부터 2025년 6월 사이 세마글루타이드 또는 티르제파타이드를 처방받았으며, 14만 3,045명은 약물 없이 식이요법과 운동 상담만 받았다. 이들을 평균 2년간 추적 조사하며 자궁내막암, 유방암, 대장암, 신장암, 난소암, 위암, 간암 등 비만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13개 암종의 발생 여부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는 유의미했다. GLP-1 비만치료제 복용 집단은 대조군보다 비만 관련 암 전체 발생률이 41%나 낮았다. 특히 성별과 질환에 따른 편차가 두드러졌는데, 남성 환자의 경우 암 발생 위험이 약 70% 감소했으며, 여성 비만 환자에게 치명적인 자궁내막암 발생 위험은 58%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종과 약물 종류에 따른 차이도 관찰됐다. 백인 환자의 경우 암 위험이 약 50% 감소하는 뚜렷한 효과를 보였으나, 흑인 환자군에서는 이 같은 유의미한 감소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성분별로는 세마글루타이드보다 티르제파타이드 사용군에서 암 위험 감소 기능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났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의료 기록을 토대로 한 '관찰 연구'이며, 추적 관찰 기간이 2년으로 비교적 짧아 약물과 암 예방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신중한 입장을 덧붙였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페드로 라미레스(Pedro Ramirez) 교수는 "이번 연구는 GLP-1 비만치료제가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광범위한 건강상 이점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그렇다고 이 결과가 약물이 암을 직접 치료하거나 차단한다는 뜻은 아니므로, 향후 정확한 검증을 위해 장기적인 임상시험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구를 주도한 카마트 박사는 "GLP-1 약물은 이미 전 세계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으며, 이번 연구는 암 예방에 대한 의학계의 사고방식까지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며 "현재 GLP-1 치료제가 자궁내막암의 성장과 예후에 미치는 구체적인 생물학적 기전을 규명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