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소아암 중 가장 흔한 급성림프모구백혈병(ALL)의 예후를 악화시키고 항암제 내성을 유발하는 핵심 유전자를 찾아냈다. 이를 통해 암세포만 골라 제거하는 맞춤형 정밀 의료의 새로운 길이 열릴 전망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과 김홍태 교수팀은 삼성서울병원 유건희 교수, 부산대 의과대학 김윤학 교수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ZNF184' 전사인자 단백질이 암세포의 DNA 복구 시스템을 마비시켜 백혈병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17일 밝혔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소아 혈액암 중 치료 성적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일부 환자는 반복적인 재발을 겪거나 기존 항암제에 내성을 보여 치료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DNA 손상을 대처하는 방식이 이러한 치료 예후 차이를 만든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 ZNF184 단백질은 암세포가 정밀한 DNA 복구 시스템인 '상동재조합'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세포가 DNA 이중가닥 손상을 입으면 본래 BRCA1 같은 복구 단백질이 모여 이를 정밀하게 수선해야 하는데, ZNF184가 활성화되면 이 단백질들의 접근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암세포는 DNA 손상을 안고 불안정한 상태로 생존하게 된다.
실제 환자 데이터 분석 결과, ZNF184의 발현량이 높을수록 전체 생존율이 낮았다. 특히 질병이 진단될 때 높았던 발현량이 치료 후 완화 상태에서 낮아졌다가, 재발 시 다시 치솟는 등 질병 진행 상황과 밀접하게 연동되는 패턴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특성을 활용한 '합성치사' 전략을 제시했다. ZNF184 과발현으로 인해 이미 이중가닥 복구 능력이 떨어진 암세포에, 단일가닥 손상 복구 경로까지 억제하는 표적항암제 '올라파립'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실험 결과, ZNF184 과발현 세포에서 생존율이 현저히 낮아졌으며,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인 독소루비신과 병용할 경우 암세포 사멸 효과가 더욱 강력해짐을 확인했다.
김홍태 UNIST 교수는 "고위험군 백혈병 환자를 미리 선별할 수 있는 유전적 바이오마커를 확보함과 동시에, 정상 세포 타격은 최소화하면서 암세포 취약점만 공략하는 정밀 의료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연구의 의미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서울대학교,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연구 성과는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뉴클레익 애시드 리서치(Nucleic Acids Research)'에 지난 10일 자로 정식 출판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