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감염병퇴치 협력기금인 글로벌펀드의 피터 샌즈 사무총장이 서울에서 아프리카 에볼라 바이러스의 '엄중한' 확산 상황을 경고하며, 초기 증상이 유사한 말라리아 예방이 에볼라 대응의 최우선 과제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샌즈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에볼라 창궐국인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과 우간다에 총 820만달러(약 127억원)의 긴급 자금 지원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민주콩고에는 640만달러가 배정되어 진단 키트 조달, 보호 장비 확보, 접촉자 추적 등에 사용되며, 우간다에는 180만달러가 진단 도구 및 질병 감시 강화에 투입된다. 현재 민주콩고는 에볼라 누적 확진자 1,094명, 사망자 277명을 기록했으며, 우간다에서는 20명 확진, 2명이 사망했다. 최근 아프리카 대륙 밖 프랑스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며 전 세계적 확산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이다.
글로벌펀드가 에볼라 대응의 최우선 과제로 말라리아 예방을 꼽은 배경에는 두 질병의 초기 증상 유사성이 있다. 고열 등 에볼라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말라리아 환자들이 보건 시스템에 몰리면서 에볼라 진단 및 격리가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샌즈 사무총장은 말라리아가 매년 약 6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민주콩고에서만 매주 70만 명이 감염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에볼라 대응에만 치중하면 현지 주민들이 방역 조치를 신뢰하고 납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말라리아 예방은 보건 시스템의 부담을 줄이고 에볼라 방역의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샌즈 사무총장은 또한 대외 원조의 지속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너무 갑작스러운 원조 중단은 그간의 보건 성과를 무너뜨리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에이즈(HIV) 사례를 들어 급진적인 원조 축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어 보건 시스템의 점진적 자립 전환 계획을 마련하고, 선진국들이 국제 보건이라는 '글로벌 공공재'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글로벌펀드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보건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할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26년부터 2028년까지 글로벌펀드 기여금을 1억달러로 늘려 투표권 있는 이사국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또한 2010년부터 2025년까지 최소 9억3천200만달러 상당의 보건 제품을 공급하며 글로벌펀드의 주요 협력국으로 평가받았다. 샌즈 사무총장은 2026 한-글로벌펀드 조달혁신 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보건 제품 조달 역량과 혁신 기술이 글로벌 보건 안보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감염병 위기 시대에는 개별 질병을 넘어선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 즉 에볼라와 말라리아 예방 연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속 가능한 보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대와 협력이 필수적이며, 특히 글로벌 보건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책임과 기여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