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DAILY의약일보

서울대 치과병원 독립 이끈 장영일 초대 병원장, 치의학계 거목 잠들다

고진아 기자

국내 치의학 발전에 한 획을 그으며 서울대 치과병원의 독립을 이끈 선구자, 장영일 서울대 치의학과 명예교수이자 1·2대 병원장이 2026년 7월 25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대 치과병원을 서울대 부속기관에서 독립 법인으로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주역이자, 국내 치과 전문의 제도 도입과 국제학술대회 개최를 통해 치의학계 위상을 높인 거목으로 기억된다.

고 장영일 교수는 서울대병원의 부속기관이었던 치과를 독립적인 법인 병원으로 설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병원 치과진료 부원장을 역임하며 치과 독립의 기틀을 다졌고, 2003년에는 서울대 치과병원 설립위원회 준비본부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와 교육부를 상대로 예산 확보, 정관 제정, 치과병원설치법 마련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등 숱한 난관을 극복하며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그의 노력으로 마침내 2004년 서울대 치과병원은 독립 법인으로 문을 열었고, 고인은 초대 병원장에 취임해 병원의 안정적인 초석을 놓았다.

고인은 독립 법인화의 가장 큰 보람으로 ‘자율성 확보’와 ‘공공성 담보’를 꼽았다. 2011년 정년퇴임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국회와 교육부를 상대로 예산, 정관, 치과병원설치법 제정의 당위성 등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힘겹기도 했지만 독립 법인화가 치과병원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의료계 내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이 됐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회고하며 그의 굳건한 의료 철학을 드러냈다. 이는 오늘날 대학병원 운영과 공공 의료의 균형점을 찾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가치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치과병원 독립 외에도 고인의 치의학계 공헌은 폭넓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치과교정학회장으로 재임하며 국내 단일 치과학회 최초의 국제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 한국 치의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또한 1998년 치과전문의 제도 도입을 위한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등 국내 치과 전문화의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서울대 치과병원 독립 이끈 장영일 초대 병원장, 치의학계 거목 잠들다
[사진=연합뉴스]

2011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그의 의료계 헌신은 계속됐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감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의료 분쟁 조정에 공정성과 전문성을 더했고, 중앙보훈병원 치과병원장으로서 국가유공자들의 구강 건강 증진에도 힘썼다.

유족으로는 부인 고인평 씨와 2남 장준호, 장준석 씨, 그리고 며느리 최은정, 구현경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26년 7월 28일 오전 6시, 장지는 시안추모공원이다.

장영일 초대 병원장의 별세는 국내 치의학계에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그가 일생을 바쳐 이룩한 서울대 치과병원의 독립과 치의학계 발전에 대한 기여는 현재 의료 시스템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자율성과 공공성'이라는 그의 철학은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Copyright © 의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대 치과병원 독립 이끈 장영일 초대 병원장, 치의학계 거목 잠들다 : 대학병원 : 의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