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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용어 혼란이 만든 착시… 설명 듣자 의사조력자살 지지율 절반으로 줄어”

이호신 기자 기자
'존엄사' 용어 혼란이 만든 착시
'존엄사' 용어 혼란이 만든 착시

'존엄사'라는 용어의 혼란이 국민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허대석 명예교수 연구팀은 '안락사, 의사조력자살,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국민 인식과 용어 혼란이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설명(시나리오) 제공 전후 의사조력자살 지지율이 72.1%에서 47.0%로 크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번 연구는 성누가병원 김수정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대한의학회지(JKMS) 2025년 11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온라인판 선공개).

논문 제목은 "말기의사결정과 관련된 용어의 혼란: 안락사, 의사 조력 자살 및 연명 치료 결정 - 한국 대중대상 설문조사".

 

△"'존엄사'라는 단어 하나로 여론 방향이 바뀐다"

연구팀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의사조력자살·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존엄사'를 연명의료결정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용어만 제시된 여론조사에서 의사조력자살 찬성 비율이 실제보다 과대 추정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용어 이해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안락사(37.4%)나 의사조력자살(53.8%)보다 연명의료결정(85.9%)이 훨씬 높았다.

반면, 각각의 시나리오를 보고 '존엄사'라는 용어를 선택한 비율은 안락사 27.3%, 의사조력자살 34.3%, 연명의료결정 57.2%로 나타났다.

즉, 국민 다수는 '존엄사'를 '연명의료중단'과 같은 의미로 인식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존엄사'라는 단어가 응답자의 해석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같은 질문이라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나리오 설명 후 의사조력자살 지지율 '절반' 감소

특히 주목할 점은 시나리오 제공 전후의 인식 변화였다. 단순히 용어만 제시했을 때 의사조력자살에 찬성한 비율은 72.1%였으나,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한 뒤에는 47.0%로 줄었다.

'존엄사'에 대한 태도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존엄사 찬성군'에서는 의사조력자살 지지율이 63.8%에서 58.0%로 감소한 반면(p=0.007), '존엄사 반대군'에서는 오히려 6.5%에서 18.6%로 증가했다(p<0.001).

허 교수는 "이는 '존엄사'라는 단어가 여론조사에서 교란 요인(confounding factor) 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국민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평안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이 선호하는 말기 선택은 '연명의료결정'

말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연명의료결정'이 41.3%로 가장 많았다. 안락사(35.5%)와 의사조력자살(15.4%)보다 높은 수치다. 이는 국민이 '적극적 생명 종결'보다는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합리적 선택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수정 박사는 "용어 혼란이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할 뿐 아니라,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며 "정확한 용어 정의와 충분한 설명이 전제되어야만 정책 기초자료로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력존엄사법' 같은 표현, 국민 인식 왜곡할 수 있어"

연구팀은 '존엄사' 용어의 모호함이 정책 논의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death with dignity(존엄사)'가 의사조력자살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연명의료결정과 혼용되면서 정책 방향 혼선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최근 논의되는 '조력존엄사법' 같은 표현은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여론조사나 정책 수립 단계에서 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명의료결정법, 현장 적용 확대해야"

허 교수는 이번 결과를 토대로 연명의료결정법의 현실적 적용 범위가 확대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법은 임종기 환자에 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더 넓은 임종 준비 단계에서의 선택권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제도는 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라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말기 돌봄과 생명윤리 논의에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연구팀은 "정확한 용어 사용과 시나리오 기반 설명이 없는 여론조사는 정책 근거로서 부적절하다"며, "국민의 실제 요구와 가치관을 반영한 말기 돌봄 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 자료>

- 대한의학회지(JKMS) 온라인판 논문: 원문 보기

-저자 해설 영상: https://jkms.org/src/jkms-summary-AVF/jkms-40-e283-AVF.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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