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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 간판 달고도 피부병 거부…1차 의료 붕괴 비상

고진아 기자

피부과 간판을 보고 병원 문을 열었지만 「피부병은 안 봅니다」라는 답변을 듣는 것이 대한민국 도심의 슬픈 현실이 됐으며, 의약일보 취재 결과 강남역 일대 '피부과' 40곳 중 37곳이 정작 피부 질환 진료를 거부하는 충격적인 실태가 확인됐다.

지난 4월 'SNL 코리아'의 '스마일 클리닉' 에피소드에서 개그우먼 정이랑 씨가 「피부과라고 해서 왔는데… 그러고도 의사야?」라고 외친 풍자는 더 이상 코미디가 아니다. '피부과' 간판을 달고도 아토피 같은 기본적인 피부 질환 진료를 외면하는 작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약일보가 2026년 6월 2일 강남역 일대 '피부과'로 검색된 상단 노출 병원 40곳을 직접 방문 및 전화 취재한 결과는 참담했다. 무려 37곳이 「피부 질환 진료는 불가능하다」며 미용 시술만 전문으로 한다고 밝혔다. 피부 질환 진료가 가능했던 3곳마저 2곳은 「현장 접수 후 2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 나머지 1곳은 「간단한 약 처방만 가능」하다고 조건을 달았다. 1차 의료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환자들의 피해는 현실이 됐다. 2월, 서울 마포구 김모 씨(34)는 얼굴에 갑자기 올라온 염증으로 집 근처 '피부과'를 찾았다 진료 거부를 당했다. 지난달 초 서울 강남구 박모 씨(29), 3월 서울 서초구 심모 씨(23)도 같은 경험을 하며 「진짜 피부과가 사라진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진과 진단 지연 사례다. 지난달, 이모 씨(42)는 얼굴 좁쌀 발진으로 여겼던 증상이 동네 '피부과'에서 단순 알레르기 진단을 받은 뒤 악화되자 수도권 주요 대학병원을 방문, 뒤늦게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피부과라는 간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허탈했다」고 토로했다. 김범준 중앙대 의대 피부과 교수는 「진단 지연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경증 질환을 중증으로 악화시키고 환자의 예후를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기형적인 의료 현실의 배경에는 법적 허점과 수익성 악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제40조는 피부과 전문의만 '○○피부과의원' 명칭을 사용토록 규정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료과목'이라는 글씨를 눈에 띄지 않게 작게 표기하고 '피부과'를 크게 부각하여 환자 오인을 유도하는 간판이 도심 곳곳에 만연한 실정이다.

'피부과' 간판 달고도 피부병 거부…1차 의료 붕괴 비상
[사진=연합뉴스]

피부 미용 진료 쏠림 현상의 근본 원인은 '수익성 악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의원실이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피부과 의원 1개당 평균 건강보험 청구액은 4억 2천400만 원으로, 정형외과(11억 9천600만원), 내과(8억 7천300만원) 등 타 진료과에 비해 현저히 낮다. 반면 개원 비용은 10억~15억 원 이상으로 높은 초기 투자가 요구된다. 최응호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는 「건강보험 수가로는 병원 운영이 어려운 현실이 일반의들을 피부 미용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는 1차 의료 인프라의 붕괴를 보여주는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신규 개설된 일반의 의원 176곳 중 83%인 146건이 피부과 진료를 신고하며 미용 시장에 진출했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작년 9월 심평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로 인해 경증 피부 질환자들은 1차 의료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상급병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수도권 주요 대학병원 피부과는 최소 4개월을 대기해야만 진료 예약을 할 수 있는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6월 4일, 비전문의 의원 간판에서 '진료과목' 표기 자체를 삭제하고 미용 시술 기관과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하반기에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환자들이 '피부과 전문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검색 서비스 및 확인 요령을 안내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김범준 교수는 「국민이 필요할 때 적절한 피부질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본 접근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의 간판 규정 개정 검토와 대한피부과의사회의 정보 제공 노력은 환자들이 '진짜 피부과'를 쉽게 찾아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규제 강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 1차 의료 인프라 붕괴를 초래하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의 심도 깊은 논의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건강한 의료 생태계 회복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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