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 새로운 시험대가 오른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3월 시행된 '재판소원' 제도의 첫 변론을 '녹십자 백신 입찰 담합' 사건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동일 사안에 대해 형사재판 무죄, 행정소송 패소라는 대법원의 상반된 판단 속에서, 국내 대표 제약사가 대법원을 상대로 재판청구권 침해를 주장한 전례 없는 법정 다툼의 서막이 열린다.
헌법재판소는 내달 7일 오후 3시, 재판소원 1호 사건인 녹십자의 백신 입찰 담합 과징금 사건(2026헌마716)에 대한 변론기일을 대심판정에서 개최한다. 이는 지난 3월 12일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본안 심리가 진행되는 것으로, 법조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녹십자가 2017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질병관리청 발주 HPV4가(가다실) 백신 구매입찰 3건에서 담합 혐의를 받은 데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20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이후 녹십자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하여 제기한 행정소송은 작년 10월 서울고법에서 기각됐다. 올해 2월 12일 대법원 또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상고를 기각하며 녹십자는 최종 패소했다. 그러나 같은 사안의 형사 사건에서는 작년 12월 대법원에서 녹십자 등 관련 업체의 무죄가 확정되어 행정소송 판결과 상반된 결론을 보였다. 형사재판부는 해당 입찰 구조상 '실질적 경쟁 관계'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녹십자는 형사 무죄에도 불구하고 행정소송 패소 및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이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4월 16일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신속히 움직여 4월 28일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며 심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대법원이 헌재의 답변서 요청에 중립성 우려를 표하며 응하지 않은 점은 최고 사법기관 간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이번 헌재의 재판소원 첫 변론은 재판소원 제도의 정착은 물론, 향후 제약·바이오 업계의 법률 리스크 관리와 유사 사례 발생 시 법적 구제 가능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과연 헌재가 상반된 대법원 판결 속에서 어떤 '정의'를 내릴 것인지, 그리고 이로 인해 사법부의 신뢰와 제약산업의 투명성에 어떤 새로운 기준이 제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