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 시대, 치료의 빛이 닿지 않던 난치성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단서가 제시됐다. 키트루다 등 면역항암제가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내성 문제로 좌절하는 현실 속에서 암세포가 면역 T세포를 무력화하는 교묘한 전략이 최초로 규명됐다.
오늘(2026년 9월 4일),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공동 연구팀은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암세포가 항산화 효소인 퍼옥시레독신1(PRDX1)을 종양 미세환경에 방출해 면역 T세포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기전을 발표했다. 이 발견은 면역항암제 내성을 극복할 새로운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T세포는 암세포 공격 시 소량의 활성산소종(ROS)을 필요로 한다. 암세포가 분비하는 PRDX1은 이 필수 ROS를 제거해 T세포의 인터페론-γ 및 종양괴사인자 생성을 방해하고 세포독성 기능까지 떨어뜨린다. 일반적으로 유해하다고 알려진 활성산소종(ROS)이 T세포의 암세포 공격에는 필수적이었다는 역설적인 발견이다.
실제로 생쥐 흑색종 실험에서 PRDX1 제거 시 종양 성장이 크게 억제되거나 면역체계에 의해 제거됐다. 특히 기존 면역관문 차단 치료(항PD-1·항CTLA-4)에 반응 않던 종양도 PRDX1 제거 후 치료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는 PRDX1이 면역항암제 내성 극복의 핵심 단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의 공동 교신저자인 케임브리지대 라훌 로이추드후리 교수는 「암이 면역체계를 차단하는 새 경로를 발견했다. 이 경로를 차단하면 일부 면역요법에 반응하지 않던 종양이 치료에 반응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오리건 보건과학대 로버트 L. 아일 교수 역시 「종양이 T세포를 억제하는 방법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이런 억제를 되돌리는 치료법을 설계할 기회도 더 많아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사람의 대장암, 간세포암 등 11개 암종에서 유래한 23개 암세포주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PRDX1이 풍부하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PRDX1이 인간 암에서도 T세포 무력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며, 미래 PRDX1 표적 항암제 개발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번 연구는 아직 전임상 단계이지만, PRDX1을 선택적으로 차단하거나 종양 미세환경 내 활성산소종의 농도를 조절하는 전략이 새로운 암 치료법으로 검토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면역항암제 시대의 난관을 극복할 새로운 지평이 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