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고나 심각한 질병·부상,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 등 외상 사건을 경험한 이후 발생한 정신질환이 향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 주요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제니퍼 A. 섬너 교수 연구팀은 덴마크 국가 보건 등록자료를 분석한 결과, 외상 경험 이후 나타난 다양한 정신질환과 주요 심장·뇌혈관 사건(MACCE) 사이에 연관성이 확인됐다고 3일 미국심장협회 저널(JAHA)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자연재해, 신체적 폭행,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 등 외상 사건이 정신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외상 후 발생하는 정신질환이 장기적인 심혈관 건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봤다.
그동안 외상 이후 정신질환과 심혈관질환의 관계를 다룬 연구는 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외상 경험 이후에는 PTSD뿐 아니라 우울장애, 불안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등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1995~2018년 덴마크 주민 가운데 외상 사건을 경험한 만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외상 경험 당시 이미 주요 심장·뇌혈관 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연구에서 제외하고, 이후 정신질환 진단과 심혈관 사건 발생 여부를 추적했다.
1995~2019년 사이 비치명적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관상동맥 혈관재개통술,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 등을 경험한 4만3994명과 주요 심혈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17만5872명을 비교했다.
남녀를 구분해 기계학습을 활용한 분석에서는 양쪽 모두에서 알코올 사용 장애가 주요 심장·뇌혈관 사건과 가장 높은 관련성을 보이는 정신질환 예측인자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의 경우 알코올 사용 장애가 심혈관 사건을 예측하는 데 기여한 정도가 두 번째 예측인자인 우울 증상보다 약 10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여성에서도 알코올 사용 장애가 가장 중요한 예측인자로 나타났지만, 우울 증상의 상대적인 비중은 남성보다 높았다.
실제 진단 비율에서도 차이가 확인됐다. 주요 심장·뇌혈관 사건을 경험한 남성 가운데 알코올 사용 장애 진단을 받은 비율은 9.4%로 대조군의 5.3%보다 높았다. 여성에서도 각각 3.5%와 1.7%로 나타났다.
여성에서는 우울장애가 가장 흔한 정신질환 진단으로 확인됐다. 주요 심장·뇌혈관 사건 경험군의 5.5%가 우울장애 진단을 받은 반면, 대조군에서는 3.8%였다.
알코올 사용 장애와 우울장애 외에도 PTSD를 포함한 스트레스 관련 장애, 뇌 손상이나 신체질환에 따른 정신장애, 성격장애, 조현병, 양극성장애, 불안장애 등이 주요 심장·뇌혈관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예측인자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외상 이후 심혈관 건강을 평가할 때 PTSD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다양한 정신질환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섬너 교수는 외상 경험 이후 일부 사람들이 감정에 대처하기 위해 술에 의존할 수 있으며, 이것이 알코올 사용 장애로 이어질 경우 심장·뇌혈관 질환 위험과 관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결과를 정신질환이 심혈관질환을 직접 유발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정신질환은 심혈관 사건의 인과적 위험요인이라기보다 향후 위험을 나타내는 '위험표지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향후 외상 이후 발생한 정신질환을 적절하게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이 장기적인 심혈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섬너 교수는 외상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정신질환을 조기에 인식하고 치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정신건강뿐 아니라 심혈관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