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신념으로 한국 보건의료 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우석균 전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향년 64세)가 영면했다. 그는 2001년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을 통해 고가 약으로 고통받던 환자들의 생명권을 지키고, 대한민국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고인은 2026년 6월 7일 0시 30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별세했다. 1962년생인 우 전 대표는 만성골수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약값이 월 300만~450만원(1정 2만5천674원)에 달해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해야 했던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이 투쟁은 국내 최초의 '환자 당사자 운동'의 이정표로 평가되며, 그는 2025년까지 성수의원 원장으로 공공의료 운동에 헌신했다.
우 전 대표의 사회 참여 궤적은 1980년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노동운동에서 시작됐다. 이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를 결성하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대표적인 활동은 단연 2001~2003년 글리벡 약가 인하 운동이다. 당시 노바티스가 글리벡 1정당 2만5천674원의 고가를 책정하며 월 300만원이 넘는 약값으로 환자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정부가 1정 1만7천862원으로 약가를 고시하자 노바티스는 약 공급 중단으로 맞섰고, 환자들의 생명은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우 전 대표는 이 상황에서 한국백혈병환우회에 연대를 제의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농성을 주도하는 등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그 결과 2003년 1월 극적인 합의가 도출됐다. 글리벡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당시 30~50%에 이르던 암 환자 외래 진료비 본인부담률이 20%로 인하됐다. 최종 약가는 1정 2만3천45원으로 고시되었으며, 노바티스는 약값의 10%를 기금으로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이는 환자들의 월 약가 부담을 214만3천440원으로 크게 줄이는 쾌거였다.
그의 공공의료 신념은 글리벡 투쟁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광우병 소 수입 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영리병원 도입 저지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마다 시민 건강권 수호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2017년에는 저서 '의료붕괴'를 통해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공공성 강화를 역설하기도 했다.
강주성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당시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는 2025년 10월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내가 살면서 의사에게 최소한의 신뢰와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면 바로 이 우석균 선생 때문일 것」이라는 글을 남기며 고인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표했다. 유족으로는 1남2녀가 있다.
우석균 전 대표의 별세는 2026년 현재에도 한국 사회에 의료 공공성과 환자 중심 가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그의 삶과 투쟁이 남긴 '이윤보다 생명'의 유산을 계승하여 의료 불평등 해소와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지속적인 사회적 연대와 실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